번뇌를 여의는 것이 곧 깨달음이다.
 
 역대 조사 스님들은 이 마음의 도리(道理)를 알려주기 위해서 손가락과 불자를 세우거나, 또는 할(喝)과 같이 고함을 지르고, 몽둥이로 내려치고, 발로 걷어차는 등 수많은 방편을 보였는데, 이 모두가 마음과 마음의 작용임을 깨닫게 하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구지(俱脂) 선사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불법이 무엇입니까? 또는 도(道)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아무런 말도 없이 오직 손가락 하나만을 세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구지 선사가 출타를 했을 때, 먼 곳에서 스님이 찾아왔습니다. 선사의 부재를 알고 매우 실망하는 스님을 보고, 절에서 구지 선사를 모시고 있던 어린 동자승이 스님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스님께서 사람들에게 늘 하시는 법문을 제가 대신 해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스님의 승낙을 받은 동자승이 말했습니다. “저에게 어떤 것이 불법의 참된 뜻입니까? 하고 물어 주십시오. 스님이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불법의 참된 뜻이니까?” 동자승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습니다. 이를 본 스님이 홀연히 깨달았습니다.
 의기가 양양해진 동자승은 밖에서 돌아온 구지 선사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선사가 말했습니다. “그 스님에게 일러준 법문을 나에게도 해다오!” 그러자 동자승이 손가락 하나를 우뚝 세웠습니다. 순간 선사는 품에 있던 깔을 꺼내서 동자승의 손가락을 잘라 버리자 동자승은 아픔에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습니다. 달아나는 동자승을 향해 구지 선사가 말했습니다. “동자야! 어떤 것이 불법의 참된 뜻이냐?” 평소에 하던 버릇대로 손가락을 세우려던 동자승이 손가락이 없는 손을 보고 문득 마음이 열렸습니다.
 과연 동자승의 깨달음은 어떤 것인가? 지금 손가락을 세우는 것은, 손가락 자신이 스스로 세우는 것이 아니고 지금 이 마음이 손가락을 세우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세우는 손가락이 없고, 손가락이 없으면 마음 또한 없습니다. 그러므로 손가락이 곧 이 마음이고, 이 마음이 곧 손가락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무엇을 보더라도 항상 보이는 대상에 대해서 크고 작고, 예쁘고 밉고, 더럽고 깨끗하고, 싫어하는 것은 버리고 좋아하는 것은 취하려는 등의 분별을 일으키고, 그 분별에 머물러 집착하기 때문에 분별을 일으키는 것이 곧 이 마음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 불법의 참된 뜻이냐? 라는 구지 선사의 고함소리에 습관대로 손가락을 세우려던 동자승은 손가락이 없는 손을 보고 평소에 지니고 있던 분별망념을 문득 여윈 것입니다.
 동자승이 분별망념에서 벗어났다 함은 크고 작고, 예쁘고 밉고, 더럽고 깨끗하다 하는 것도 이 마음이며, 싫어하는 것은 버리고 좋아하는 것은 취하려 하는 것도 이 마음이 하는 행위이며, 손가락을 세우고 내리는 것 또한 이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을 두고 분별망념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앞에서 동자승의 손가락을 보고 홀연히 깨달은 스님도 이와 같은 깨달음입니다.

진원 스님
안동시 와룡면 매구네길 84 보현사